검정치마(The Black Skirts)

音樂, 멜로디 2009. 2. 25. 21:43


오랜만에 엄청 좋은 음반을 들었는데, 바로 검정치마의 '201'이다.
아니나다를까 나름 꽤 인디에서는 알아주는 밴드인듯.
검색해보니 관련 글이 예상보다 꽤 많다.
사실 처음 들을 때는 정체불명의 음반이라고 생각했는데,
펑크부터 락앤롤부터 뉴웨이브 스런 곡들부터
꽤 잡다한? 음악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저기 저 표지도 정체불명. 201이라는 앨범명은 또 뭔지 -_-)
게다가 한 곡에서조차 별로 일관성이란 게 없다.
느린 리듬과 빠른 리듬, 메이저와 마이너를 넘나드는데다
심지어는 가사까지 영어였다가 한국어였다가 에스파냐어?(맞나)로 추정되는
언어가 나왔다가 아주 난리도 아니다.
가사는 또 어찌나 직설적인지
착한 생각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여튼 이처럼 잡탕밥스러운 앨범이지만
놀랍게도 전혀 산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자유분방함이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그 비결은 역시 밴드의 내공이겠지만
그중에서도 보컬이자 검정치마의 중심?이라할 수 있는 
싱어송라이터 조휴일의 내공은 만만치 않아보인다.
전혀 다른 느낌의 리듬과 멜로디들을 능수능란하게 바느질하는 그의 내공은
사실 좀 대단한 것 같다.
어디서 봤는데, 검정치마의 이 1집을 델리스파이스의 1집에 견주는 글까지 있었다.
(물론 음악성면에서가 아니라 한국 인디 음악의 어떤 전환점이라고 해야하나, 뭐 그런 면에서)
그렇게까지 대단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검정치마의 이번 앨범은
확실히 최근 들은 앨범들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고 재미있는 앨범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귀에 꽂히는 노래는 역시 좋은만큼 가장 유명한 '좋아해줘'와 'antifreeze'이다.
락앤롤을 재치있게 해석한 'stand still'도  재미있는 곡이다.
 



첨부한 노래는 antifreeze, 멜로디도 멜로디지만 가사가 상당히 좋다~

우린 오래 전부터 어쩔 수 없는 거였어
우주 속을 홀로 떠돌며 많이 외로워하다가
어느 순간 해와 달이 겹치게 될 때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거야

하늘에선 비만 내렸어 뼛 속까지 다 젖었어
얼마있다 비가 그쳤어 대신 눈이 내리더니
영화서도 볼 수 없던 눈보라가 일 때
너는 내가 처음 봤던 눈동자야

낯익은 거리들이 거울처럼 반짝여도
니가 건네주는 커피 위에 살얼음이 떠도

우리들은 얼어붙지 않을거야
바다속의 모래까지 녹일거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 위로

숨이 막힐 것 같이 차가왔던 공기 속에
너의 체온이 내게 스며들어 오고 있어

우리들은 얼어붙지 않을거야
바다속의 모래까지 녹일거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 위로

너와 나의 세대가 마지막이면 어떡해
또 다른 빙하기가 찾아오면은 어떡해

긴 세월을 변하지 않은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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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쉽게 씌여진 시

詩,글 2009. 2. 15. 17:36



 
* 동지사 대학에서..
만주에 갔을 때 윤동주 생가를 가보지 못한 게 참 아쉬웠는데,
이 곳에서나마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나는 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의 시는 쉽고 다정해서 참 좋다.
그러면서도 꽤 공감을 불러일으켜서, 마치 따스한 오라버니의 음성을 듣는 것 같다.
언젠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일제시대에 태어났다면, 이라는 주제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윤동주의 삶을 떠올렸었다.
민족의 아픔에 대해 예민하게 공감하고 슬퍼하면서도 미처 그에 저항하지 못하고
적국에서 학업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윤동주.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기에 더 슬프고 우울했던 일본에서의 그의 삶은
지금 서울에서의 나의 삶과 여러 모로 공감되는 바가 많아 더욱 와닿는 바가 컸다.
그의 시들 중에는 좋은 작품들이 참으로 많지만 
오래전부터 나의 가슴을 울컥하게 만드는 시는
바로 그가 일본에서 대학에 다닐 무렵의 풍경을 가장 잘 잡아낸
'쉽게 씌여진 시'이다.
고등학교 시절 한창 가슴에 맺힌 게 많았던 무렵에는
9, 10 연만 되뇌이면 눈물이 주루룩 흐르기도 했었다.
아직도 내 자신과 진정한 악수를 나눠보지 못한 지금도
그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 구절에 이르면 가슴이 찡해지곤 한다.
언제쯤이면 나도 아무렇지 않게 이 구절을 읽어내려갈 수 있을까.
 



쉽게 씌여진 시/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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