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개밥바라기별

詩,글 2009. 2. 25. 23:00



나는 언제부터인가 소설을 잘 읽지않게 되었는데
아마 역사를 공부하면서 허구보다는 날 것의 사실들에 더 익숙해지면서부터 인 것 같다.
최근에 다시 소설을 꺼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멀게만 느껴지는 '역사적'사실들에 치일대로 치여서
그 차가움에서 어디론가 멀리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특히 우리 자신이 속해있는 대다수 民의 삶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최근인가 우리과의 한 교수님도
'역사는 인간 사회의 일들 중에서도 뭔가 주목할 만하고 중요한 것에 대해 기술하는 것이지,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것에 대한 것이 아니다'
라는 기막힌 이야기를 하셨으니까.(동의하는 건 절대 아니다-_-)
그런 면에서 여러가지로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우리의 삶은 역사에 있어선 참 슬픈 것이다.
하지만 문학은 역사와는 달라서,
역사처럼 뭔가 주목할 만하고 중요한 사람들이나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소소하고 평범한 사람들과 사건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비록 가공된 것일지라도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그들을 공감하고 어루만지고 위안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내게 그와 같은 문학의 따스함을 여지없이 보여준 작품이다.

지금은 이렇게 더 없이 평범해져버린 내게도
소설의 준처럼 유난스럽게 격정적이었던 청소년기가 있었다.
그 시절 내가 준만큼 똑똑하고 용기있었더라면 아마 그처럼 결단력있게 제도권을 박차고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랬을 때 따라붙게 될 세상의 수 많은 선입견들과 꼬리표들을 미처 견뎌낼 수 없을 정도로 나약했고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그 실체조차 뚜렷이 파악치 못한 나는
그럭저럭 폭력적인 제도권 교육을 살아내고 또 다른 제도권 교육 속으로 편입되었다.
대학에 다니며 한 동안 나의 그와 같은 역사를 잊고 살았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잊으려고 애써 노력했던 것 같다. 
가까스로 기존의 궤도로 돌아온 내게 있어서 고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은 어리석은 패배자의 모습으로서
앞으로 전진해나가기 위해서는 잊지 않으면 안 될 상처처럼 느껴졌다.
그 시절로부터 단절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잊은 것처럼 그 시절을 마주보지 않고 살면, 정말로 마치 타자바라보듯이 그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없이 4년을 뭣에 휩쓸리듯 살아내고 다시 미래를 준비해야만 하는 시기가 와서야 
나는 비로소 그 때의 내 모습 -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현재에 대한 불만, 이해할 수 없는 감정적 휩쓸림으로 가득 찬 -이 잊으려는 스스로의 의식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스란히 내 안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개밥바라기 별을 통하여 이러한 나의 불안이 실은 실존하는 인간으로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어쩌면 평생을 안고가야하는 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준은 그로 인해 학교라는 제도권으로부터 뛰쳐나왔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방황했고 마치 자신을 내던지듯이
베트남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신처럼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에, 인간은 본디 그런 것이다.
하지만 작가 황석영이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아붙였던 모든 불안들을 딛고 작가로서 스스로를 완성시킬 수 있었듯이 인간은 또한 그 불안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니까 나도 너무 지난 시절의 내 모습을, 그리고 오늘날의 내 모습을 비난하지 말자. 그리고 그 불안을 통해 어제보다 오늘 더 성숙해졌음을 믿으며, 나의 불안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자. 
나중에 내가 황석영 작가만큼 나이를 먹었을 때, 그처럼 나도 나의 지난 삶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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