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새의 선물

詩,글 2009. 3. 26. 19:56

새의 선물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은희경 (문학동네,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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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다독' 첫 모임에서 읽게 된 책. 대략 모임에 제출?하려고 wbc를 보며 급하게 적은 나의 감상은 다음과 같다. 그런데 이 글을 발표하고, 한참이나 장황하게 소감을 덧붙여 설명한 이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대략의 나의 감상이 전달되었다는..
그러니까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새삼 깨달았다. 훌륭한 작가는 정말로 위대하구나.  

=>  12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조숙한 ‘진희’의 성장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우선 무척 재미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친근하고도 현실감 있는 인물들과 이들이 이끌어가는 - 누구나 어린 시절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법한 - 일상적인 에피소드들이 좋았다. 특히 어린 나이에도 너무나 조숙한 진희와 대비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즉 나이는 많지만 너무나 철이 없고 사랑스러운 막내딸인 이모의 캐릭터라든지 별 비중 없이 등장하긴 하지만 철없는 이모에 대한 충성스러운 순정을 보여주는 홍기웅, 무능하고 소시민적인 일상을 살아가다가 죽음으로써 비로소 그 존재를 주위에 각인시키는 이 선생님, 남편의 일상적인 폭력과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운명’이라는 믿음 하나로 ‘뒤웅박 팔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광진 테라 아줌마 등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면에서 내게 이 소설에서 가장 일상적이지도 친숙하지도 못하게 느껴졌던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이자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체라 할 수 있는 진희였다. ‘진희의 특유의 세상을 비웃는 듯한 차가운 시선이 다른 긍정적인 인물들이나 에피소드들과 균형을 이루어 이 작품을 단순한 세태 소설 이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범상한 이여서 그런지; 성이든 사랑이든 죽음이든 모든 것이 다 우연적이고 허무한 것이라는 진희의 결론을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거부감이 들었다. 이런 것이 진정한 성숙이라면 차라리 나는 성숙하지 않은 채로 살고 싶다. 세상에 대한 신비감을 모두 버리고 냉소적인 태도로 삶에 임하는 것이 성숙이라면 진희 스스로도 말하고 있듯이, 성숙한 이에게 세상은 참 재미없는 것이 될 것만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희의 이러한 냉소적인 모습이 분명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른바 ‘어른’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진희가 작위라고 명명했던 ‘보여지는 나’와 ‘진짜 나’를 분리하는 행위라든지, 스스로의 기대와 희망이 좌절되었을 때 느끼는 절망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애초에 기대나 희망과 같은 감정을 갖지 않는다던지 하는 것들이 그렇다. 실제로 나 역시 삶에서 커다란 상처를 받을 때마다 그러한 결심을 품곤 했었다. 그런 면에서 진희가 말하는 성숙이란 진정한 성숙이라기보다는 삶의 상처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식인 것 같다. 작가도 에필로그에서 말했듯이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이 이어진다.’ 하지만 단지 삶의 상처를 ‘덮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치유’를 꿈꿀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러한 꿈을 꾸는 것으로 보아 진희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아직 ‘어린애’ 일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진희가 말하는 ‘성숙’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엔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이 너무나 재미없게 느껴져서 삶에 대한 의지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좀 더 방황하고 삶을 믿고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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