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쉽게 씌여진 시

詩,글 2009. 2. 15. 17:36



 
* 동지사 대학에서..
만주에 갔을 때 윤동주 생가를 가보지 못한 게 참 아쉬웠는데,
이 곳에서나마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나는 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의 시는 쉽고 다정해서 참 좋다.
그러면서도 꽤 공감을 불러일으켜서, 마치 따스한 오라버니의 음성을 듣는 것 같다.
언젠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일제시대에 태어났다면, 이라는 주제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윤동주의 삶을 떠올렸었다.
민족의 아픔에 대해 예민하게 공감하고 슬퍼하면서도 미처 그에 저항하지 못하고
적국에서 학업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윤동주.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기에 더 슬프고 우울했던 일본에서의 그의 삶은
지금 서울에서의 나의 삶과 여러 모로 공감되는 바가 많아 더욱 와닿는 바가 컸다.
그의 시들 중에는 좋은 작품들이 참으로 많지만 
오래전부터 나의 가슴을 울컥하게 만드는 시는
바로 그가 일본에서 대학에 다닐 무렵의 풍경을 가장 잘 잡아낸
'쉽게 씌여진 시'이다.
고등학교 시절 한창 가슴에 맺힌 게 많았던 무렵에는
9, 10 연만 되뇌이면 눈물이 주루룩 흐르기도 했었다.
아직도 내 자신과 진정한 악수를 나눠보지 못한 지금도
그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 구절에 이르면 가슴이 찡해지곤 한다.
언제쯤이면 나도 아무렇지 않게 이 구절을 읽어내려갈 수 있을까.
 



쉽게 씌여진 시/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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